신년의 시작과 함께 얻은 깨달음 : 상상하지 않기

2020. 1. 6. 15:31쓰고싶은 욕심/짧은 글도 써요

 

 

 

 

 

신년의 시작과 함께 얻은 깨달음 : 상상하지 않기

 

달력이 끝이 났다.

 

베일 듯 새하얀 신년 달력을 꺼낸다.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377개의 숫자들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아득하다 못해 아찔하다.

머지않아  ‘조금 있으면 내년이네’ 라는 생각과 함께 달력의 마지막 장을 넘기게 될 것이다. 흐르는 시간은 막지 못하며 나의 한 해는 늘 아쉽다.

 

일주일 만에 신년 계획의 일부를 포기했다. 바쁜 연말과 연시는 글에 집중하지 못하게 한다. 늦지 않았으니 다시 마음을 잡는다.

 

신년의 시작과 함께 얻은 작은 깨달음을 나열한다.

 

한 지인은 연말과 연시에 의미를 둔다고 한다. 최근의 나도 그런 편이다. 

얼마 전까지의 새해는 생각의 정리를 위한 조용한 시간의 '틈' 일뿐이었다. 나이를 먹기는 했나 보다. 사람들과 북적이던 최근의 연말이 좋다. 부대끼는 감정들이 좋았다.

 

그렇게 끝냈어야 했다.

 

혼자서 연말을 보낸다는 사람에게 ‘저런’ 이라 말했다.

‘누군가 외로이 있다는 사실에 마음을 뒤척이게 되는 오지랖’을 부리게 된 것이다. 망측한 문장이다.

 

아무렇지 않은 사람을 ‘외로운’ 사람으로 만들었다. 나보다 행복한 사람을 ‘동정’했다.

말을 내뱉자마자 같잖은 단어들로 포장하려 했다. 그마저 나에게는 그를 향한 위로였으며  ‘위로’는 상황에 맞지 않는 행동이다. 괴로웠다.

 

‘외로움’이라 칭하고 ‘동정’한다는 자체가 변했다는 증거다. 혼자 있는 삶을 사랑할 수도 있지 않나. 독이 되는 존재가 싫어 혼자 보내던 과거를 생각해야 했다.

 

과거를 무시하고 ‘역변’해 버린 사고방식이다. 나라는 인간은 ‘적응’의 동물 보다는 철저한 과거 ‘삭제 형’이다. 행복했던 혼자의 ‘과거’를 잊은 채 북적이는 현실에서 타인을 ‘상상’하고 말았다.

 

새해에 꼭 지키고 싶은 마음의 다짐이 있다.

‘나의 눈높이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속단이다. 오지랖이고 망상이다. 존중이 필요하다.

 

신년 사업계획서 발표가 있었다. 회사의 달력이다. 이 달력을 토대로 회사의 일 년이 지나간다.

오랜만에 다수를 바라보고 섰음에도 이상하리만큼 떨지 않았다. 그저 발표를 무시한 채 핸드폰에 집중하던 사람만 눈에 들어왔다.

 

괘씸했다. ‘그러라고 만든 자리가 아닐 텐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반전이 찾아왔다. 발표를 가장 경청해 준 사람이 그 사람이었다. 핸드폰에 메모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쏟아지는 관심에 현기증이 났다.

 

‘아차’ 싶었다. 미안했다. 잠깐이었지만 속단한 나를 반성했다. 나의 눈높이로 판단한 그 사람에게 사과하고 싶었다. 그렇게 다짐했다. 더 이상 펼쳐질 대로 펼쳐진 뇌 주름으로 상대를 판단하지 않기로 말이다.

 

올바른 인간관계는 결국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달려있다.

독특한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 아닌 특별한 사람일 수 있다.

허나 속을 낱낱이 알지 못하는 이상 타인을 ‘이해’하는 것도 결국은 나의 주관적인 판단이다.

사람의 ‘사실’을 알아채는 것이 아직은 너무 어렵다. 진실과 왜곡은 늘 함께하니까.

 

새해를 맞이하고 뜻밖의 장소에서 배움을 얻었다.

생각을 뒤틀어보는 연습이 필요한 것 같다.

2020년의 나는 더 이상 상상하지 않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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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0년에는 행복과 행운이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저의 글에도 잘 읽히고 잘 쓰이는 행운이 깃들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