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위'는 언제부터 목을 조르게 되었나.

2019. 12. 19. 13:16쓰고싶은 욕심/짧은 글도 써요

 

 

 

 

 

‘단위’는 언제부터 목을 조르게 되었나.

 

단위라는 것은 왜 만들어져야 했을까.

유일신 아래 모든 중복되는 만물을 '셈' 또는 '측정' 하는 행위에 있어 '단위'를 사용한다. 극히 드문 문맹부족의 경우를 제외하고 말이다. 그들도 나름의 단위는 분명 존재할 것이다.

 

단위는 정확한 '측정'을 위해 기초가 되는 일정한 기준에서 유래한다.

 

나는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 방식이야 흔한 다이어터들처럼 진행하는 것이나 새로운 방식을 도입했다. ‘체중계에 올라가지 않는 것’이다. 반복된 다이어트의 실패 곁에는 늘 유려한 디자인의 괴팍하고 난폭하며 악랄한 기능을 가진 체중계가 있었다. 체중계는 무려 ‘BMI 분석’ 기능도 생겨 몸뚱이의 죄질이 유난히 무겁게 체감되곤 했다. 그렇다, 내 체중계는 신식이다.

 

마지막이길 간절히 기원하는 이번 다이어트에는 ‘단위’를 버리기로 했다. 최소한 그 빌어먹을 단위에 얽매이진 않을 테니까. 효과는 괜찮은 것 같다. 일단 스트레스를 적게 받으며, 가끔 폭식의 죄를 지어도 죄질이 가볍다. 단위가 나를 옥죄지 않기 때문이다. 당분간 유지 할 계획이다. 하지만 언젠가 체중계위에 올라가게 되는 날 ‘kg’을 ‘g’으로 바꾸는 최면을 걸게 될 것이라 예상한다.

 

나를 옥죄는 경험은 다들 해봤을 것이다. 오늘은 욕심을 조금 내려놓기를 권유하고 싶은 마음에 쓰는 글이다. 만병의 근원 '스트레스'를 받는 원인이 혹 이 단위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삶을 편하게 변화시키고자 만들어진 단위가 언제부터 사람을 옥죄었을까.

 

우리는 수치와 통계로 대중을 이해시키는 것에 긍정을 표한다. 그것을 뛰어넘을 객관적 지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어떠한 단위와 수치를 삶의 '목표'로 삼고 살아간다. 나와 가족을 위한 아늑한 집 한 '채', 욜로 라이프를 위한 연봉 몇 천만 '원' 같은 것 말이다. 혹은 야생보다 더 치열한 경쟁에서의 단위도 있다. 온라인 쇼핑몰의 '타임어택 이벤트'와 '성덕'이 되기 위한 내가수의 콘서트 '티켓팅' 등 '초'단위 유니버셜 챌린지가 있다. 논외로 저것들을 실현하지 못한 분노로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사회는 '천천히, 조금 빠르게' 대신 '몇 시 까지' 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한국 정서에 맞는 대화법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치워버릴 수 없는 단위를 잠시만이라도 멀리 해보는 건 어떨까 한다. 주식, 회계 등 단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면 단위를 변경해보자. ‘한 놈, 두 놈’ 등 자신만의 쉬어가는 단위로. 아니면 마음이라도 먹어보자. 단위로부터 받는 나의 죄질을 가볍게 해보자. 혹시 모르는 일이지 않나, 스트레스의 가벼움이 허락됨과 동시에 무엇인가의 깨달음이 다가올지도. 결국 이 또한 마음먹기에 달린 일이지만 말이다.

 

태초의 단위는 목을 조르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가벼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