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함께 무너져 가는 것들.

2024. 10. 30. 10:52쓰고싶은 욕심/짧은 글도 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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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것이 무너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지갑이.

 

 

 

몸이 아파오기 시작할 때 냉장고가 울기 시작했다.

 

담석증과 위경련으로 새벽을 설칠때면 느닷없이 냉장고가 함께 짖어대기 시작했고,

내 속과 함께 냉장고는 완전히 무너졌다.

결국 나는 지인의 냉장고를 받고 녀석을 폐기처분 하는 것으로 마무리 했었다.

 

냉장고를 해결하니 이번엔 세탁기다.

 

혹시나 싶어 신청했던 수리 서비스는 나의 구형 우렁각시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음을 고했다.

더 이상 부품이 생산되지 않을 뿐더러, 너무 오래 되어 고칠 수도 없다는 일종의 통보와 함께.

‘곧 이사를 갈테니까’ 라는 근거 없는 의지로 소량의 빨래만 가능한 통돌이 세탁기를 구매했다. 데일리 빨래통.

 

첫 자취 생활의 시작부터 약 16년이 지나기까지 남아있는 게 있긴 한가?

 

전자레인지. 딱 하나 남았다.

다른 가전들은 모두 폐기되거나 망가져 모두 교체되었다.

 

사실 물건을 꽤 오래 사용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가 시집올 때 들고왔던 먼지 하나 쌓이지 않은 골드스타 전자렌지가 최근까지도 살아있던 걸 본 이상 그 생각도 함께 폐기처분 한다.

 

구청에 폐기물 신청을 한다.

 

누구도 지나칠 수 없도록 잘 보이는 곳을 이번생 마감 스티커로 어루어 만지며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

너는 이제 할 만큼 했어. 다음 생엔 더 강하고 멋진 스펙으로 태어나서 나보다 건강한 주인을 만나길 바라.

 

그런 느낌이다.

교체되어야 하는 것들의 사이클이 맞아 떨어지는 느낌.

 

가전을 교체해야 할 시기.

내 몸을 교체해야 할 시기.

신경쓰지 않고 살아오다 문득 고쳐쓰지 못할 정도가 되어 정신을 차려보니 그 시기다.

 

그냥 일반 백색가전의 부르짖음이 이렇게까지 고통스럽게 다가 올 일인가 싶다.

(틈 없이 발생하는 예측하지 못한 지출이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 큰 것 같긴 하다)

 

오늘 방문한 병원에서 너는 지금 당장 수술조차 할 수 없는 몸이니, 수술을 할 수 있는 몸으로 바꿔 오란다.

최대한 빨리 수술부터 갈기고 어느 하나라도 건강의 시발점을 건너길 바랐지.

 

그게 안되면 조금 더 쓸 줄 알았지.

 

괜찮을 줄 알았지.

너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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